플루트와 대금을 위한 이중 협주곡 《그랭이》
《Geuraengi》 for Flute, Daegeum and Orchestra
Prime Philharmonic Orchestra / Yunsung Chang
Flute : Jiwon Suh / Daegeum : Pilki Lee
프라임필하모닉 오케스트라 / 장윤성
플루트 : 서지원 / 대금 : 이필기
2020. 3. 3 IBK Chamber Hall, Seoul Arts Center
*작곡가의 작품설명
그랭이는 얇은 대나무로 만든 집게 모양의 연장으로 집게의 한쪽 다리에 먹을 찍어 선을 그릴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랭이를 사용하여 부재의 울퉁불퉁하고 불규칙한 모양을 그대로 다른 부재에 옮기는 것인데 예를 들면 나무기둥을 초석 위에 세울 때 한 부재의 모양에 따라 다른 부재의 면을 가공해주어야 할 때 사용하였다. 이렇듯 우리의 조상은 자연과 인공이 부딪히는 곳에서 자연에 우선권을 준 것을 볼 수 있다.
한국의 정원과 일본의 정원을 비교해 볼 때에도 위에서 언급한 점을 찾아볼 수 있다. 한국의 정원과 일본의 정원은 많은 차이가 있겠지만 가장 주요한 차이점은 인공미와 자연미일 것이다. 일본의 정원은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완벽한 인공미를 자랑하는 반면, 한국의 정원은 마치 자연 속에 방치된 것 같은 느낌을 주며 자연미를 자랑한다.
이 곡을 쓸 때 위와 같은 선조들의 생각을 곡에 담고 싶었다. 대금을 사용하기 때문이었다. 외국에 있다 보니 사실 국악기를 사용하여 작곡하는 기회가 거의 없었지만 그보다도 국악기로 어떻게 곡을 써야 할 지 내 안에서 정리가 되지 않아 시도조차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나에게 대금을 플루트처럼 쓰는 것은 현대음악일지라도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다. 대금을 써야 하는 이유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대금과 플루트를 위한 협주곡을 이러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좋은 편성이자 매력적인 편성이다. 플루트가 있기 때문에 대금을 플루트처럼 쓰는 (나 스스로 정해놓은) 과오를 피할 수 있는 편성이라 생각하였다. 또한 한국악기와 서양악기가 동시에 사용되는 이중 협주곡이기에 융복합 관현악의 의미가 더욱 증폭되고 굉장히 흥미로운 음향과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하였다.
서양의 현악기와 한국의 가야금, 거문고, 아쟁 등은 활의 유무, 연주 자세, 음량 등에서 꽤 많은 차이점을 보이는 반면, 악기 중 제일 오래되었다고 볼 수 있는 목관악기 그 중 대금과 플루트는 음역과 외형, 연주 방식에 많은 공통점을 발견 할 수 있다. 두 악기 모두 횡적이며 취구에 바람을 넣는 악기이며 또한 구멍을 손가락으로 막아 음을 내는 구조의 악기이다. 그러면서도 음계와 음색, 비브라토를 만드는 방법을 비롯한 악기의 연주 방법 및 주요 레퍼토리에서 많은 차이점이 있다.
그렇기에 대금과 플루트가 각기 특징을 잃어버리는 희생 없이 두 악기의 매력을 잘 살리고 또한 대금으로 인해 나의 음악적 색깔도 제한되지 않고 싶었다. 이러한 균형 혹은 조화를 이루는 것이 이 곡을 쓸 때의 고민들이었고 이러한 고민은 곡의 형식을 구성하는 밑바탕이 되었다.
이 곡에서 또 하나의 주안점은 산조대금의 사용이다. 서양음악의 협주곡이란 (전통적인 음악의 측면에서 보자면) 본디 독주 악기의 기교를 충분히 발휘하는 곡이다. 더군다나 현대음악에서는 음 재료와 형식의 구애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협주곡의 의미는 더욱 확대해석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정악대금보다는 산조대금이 협주곡에 더욱 어울리는 악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산조대금이 플루트의 화려함에 대적할 수 있는 민첩함과 음색을 정악대금보다 더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단 산조대금과 평균율의 음고 차이가 해결할 문제였는데, 오히려 차이나는 음정을 특징으로 살리고 연주자의 기량으로 해결하였다.
이 곡은 총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첫 번째 부분은 플루트와 정악대금이 연주하는 부분이다. 같은 음악적 재료지만 대금과 플루트가 가진 다른 색깔로 인해 대조가 이루어 진다. 두 번째 부분은 플루트와 산조대금이 연주하는 부분이다. 이 부분에서는 산조대금과 플루트의 음정 차이를 이용한 대조가 나타나고 같은 주법의 두 악기가 연주함으로 나타나는 음색의 대조 또한 표현된다. 세 번째 부분은 플루트와 산조대금이 협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대금산조의 자진모리 부분과 플루트의 민첩한 패시지가 어우러져 산조에서 느껴지는 신명남과 플루트의 기교가 함께 공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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