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약통장 없이도 아파트를 마련할 수 있는 제도로서 무주택 서민을 위한 '지역주택조합'이 전국 곳곳에서 갈등을 빚고 있다. 조합원이 모여 만든 조합이 직접 시행사가 돼 시행사 이윤과 토지금융비 등을 절감할 수 있어 시세보다 싼 것이 장점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울산 울주군의 한 지역주택조합은 해산 절차를 밟고 있었다. 땅을 다 사고도 건축심의 통과를 못해 사업이 무산됐는데, 사업지 자체가 지역주택조합으로는 할 수 없는 땅이었던 셈이다. 알고 보니 조합장과 업무대행사 대표는 1 km 떨어진 곳에서 또 다른 지역주택조합 2개를 더 추진하고 있었다. 3천만 원씩 손해를 보게 된 조합원들은 사기를 당했다고 생각하지만 경찰은 입증이 쉽지 않다며 수사에 소극적이다.
아파트 공사가 되더라도 추가분담금 때문에 갈등은 또 이어진다. 시간이 지나면서 당초 홍보했던 가격보다 추가분담금 수천만 원을 더 내고 입주해야 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충북 청주의 한 지역주택조합은 조합장이 업무대행사 대표와 사업을 추진하면서 가족과 친척이 관여된 업체에 백억 원 이상의 용역을 발주하는 등 물의를 빚었다. 결국 조합장이 두 차례 교체됐지만 조합에는 160억 원의 사업비 부족이 예상된다.
지역주택조합은 신탁사에 자금 관리를 맡긴다며 조합원을 안심시키지만 실제와 다르다. 자금관리대리사무 계약은 신탁사가 자금 집행의 구체적인 타당성까지 검증하도록 되어 있지 않다. 신탁사는 조합 규모에 따라 수억 원에서 십억 원 넘는 돈을 받지만 조합에서 서류를 갖춰 제출하면 돈을 내어 줄 뿐, 그것이 타당한지 살피는 것은 자신들의 일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취재 과정에서 공사를 맡은 시공사가 조합 일에 관여하며 문제가 드러난 조합도 있었다. 올해만 전국에 97개 지역주택조합 사업장을 가진 서희건설의 임원 2명은 자신이 맡고 있던 대구의 한 지역주택조합에 금융자문사를 추천하고, 그 대가로 금융자문사로부터 6억 원을 챙겼다가 적발됐다. 지난 17일 법원으로부터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조합의 시작부터 조합장(추진위원장)과 업무대행사, 각종 용역사들이 사적인 이해관계로 얽히고설킨 채 사업을 출발하면서 문제가 일어나는 지역주택조합이 많다. 하지만 조합장과 업무대행사의 전횡, 배임 횡령 등을 견제할 제도적 장치는 허술하기만 하고 조합원이 사업에 관여하기가 어려운 구조가 지금의 지역주택조합이다.
KBS가 전국 기초자치단체에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은 지역주택조합 현황을 분석한 결과 690개 지역주택조합(추진위 포함) 가운데 170개(24.6%)만이 아파트를 지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합 승인을 받은 지역주택조합 가운데 2년이 지나도록 땅 매입을 마무리하지 못해 사업승인에 이르지 못한 조합이 92개나 됐다.
국토교통부는 2016년과 2017년 법 개정으로 조합 투명성을 높였다고 평가하며 앞으로도 지역주택조합에 대한 지치단체의 관리 감독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주택 소유자들이 추진하는 재건축·재개발에 관련된 법(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항이 142개로 늘어나며 보완됐지만 주택법 안에 무주택서민을 위한 제도인 지역주택조합 관련 법은 여전히 10여 개 조문밖에 없다.
KBS [시사기획 창]은 전국의 지역주택조합의 사례를 통해 허술한 현행 제도의 문제와 내 집 마련 꿈을 잃은 서민들의 피해를 취재했다.
19.10.19 KBS1TV 방송
[시사기획 창 - 지역주택조합, 무너진 서민의 꿈]
취재: 손원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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