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이야기

책이 귀했던 60년대 초. 책을 사서 읽는 것이 힘들었던 그 시절의 젊은이들은 마을의 4H 사랑방 문고에서 책을 빌려볼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인기있던 책 중에는 방인근 작가의 ‘새벽길’이란 소설이 있었지요.

방인근 작가의 ‘새벽길’이라는 소설은 가난한 시골 애인을 버리고 부잣집
사장의 딸과 결혼한 남자 주인공이 비극적인 종말을 맞는 내용이었는데요. 통속적인 이야기였지만, 사람들은 소설의 내용에 마음을 빼앗겼고,
‘새벽길’은 KBS 드라마로도 만들어지고, 영화로도 제작될 만큼 인기였습니다. 특히, 1967년 합동영화사에서 만든 영화 ‘새벽길’은 신성일 고은아,
남정임 등, 당대 최고의 인기 청춘스타를 동원해서 제작한 대작이었는데요. 그 당시 동아극장에서 개봉해서 무려 10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할 정도로
흥행에 성공했죠.

고향에 있는 가난한 연인은 고은아씨가, 부잣집 철부지 여대생은 남정임씨가, 그리고 돈을 쫓아서 가난한 애인을 버리는 비정한 남자 역할엔 신성일씨가 열연을 펼쳤는데요. 부잣집 딸과 결혼을 했지만, 가난한 시댁을 무시하고 모욕적인 행동을 하며 불륜은 저지르는 아내를 결국 살해하고 살인범이 된 신성일씨가 죄값을 치르고, 자신의 과거를 참회하며 출소해서 옛 애인을 찾아가지만, 이미 결혼한 고은아씨는 차마 신성일씨를 따라가지 못하고 눈물로 보내게 됩니다.

안개가 자욱한 새벽길을 허름한 차림으로 쓸쓸하게 걸어가는 신성일씨와
돌아서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고은아씨의 모습 위로 가슴 시리게 들려오는 노래는 수많은 관객들을 울렸는데요. 그 노래가 바로 이 영화의 주제가인 남정희 선배님이 노래한 ‘새벽길’입니다.

당시 관객들은 이 노래가 끝날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고요.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느라 바빴는데요. 이두영 선생님이 쓴 아름다운 가사와
백영호 선생님의 애달픈 멜로디, 그리고 애절한 남정희 선배님의 목소리는 수많은 여심들을 울렸고, ‘새벽길’은 최고의 노래로 사랑 받았습니다.


‘ 사랑은 하늘가에 메아리로 흩어지고
그 이름 입술마다 맴돌아서 아픈데
가슴에 멍든 상처 지울 길 없어라
정답던 임의 얼굴 너무나도 무정해
울면서 돌아서는 안개 짙은 새벽길

꽃잎이 눈처럼 창가에 내리는 밤
기러기 날개 끝에 부쳐보는 사연은
사랑이 병이 되어 찾아온 가슴에
뜨겁던 임의 입김 너무나도 차거워
울면서 돌아서는 안개 짙은 새벽길 ’


남정희 선배님은 작곡가 백영호 선생님이 당대 최고의 가수였던 이미자
선배님에게 필적할 유망주로 발굴한 가수였습니다. 5남매중 막내로 어려서부터 노래하기를 좋아하고 잘 불렀던 남정희 선배님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작곡가 백영화 선생님의 눈에 띄게 되었고요. 백영호 선생님의 자택을
오가면서 노래공부를 시작하다가 1967년 한 해에만 ‘총각 뱃사공’과
‘사랑하지 마세요’ 그리고 ‘새벽길’을 발표했는데요. 방학기간을 이용해서
녹음한 이 곡들은 여고생의 목소리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성숙한 음색이 돋보였고, 가요계 샛별의 등장을 알렸습니다.

‘새벽길’ 역시 열여덟살 나이의 남정희 선배님이 영롱하고 앳된 목소리로
풍부한 감정을 담아 구슬프게 노래하면서 많은 가요 관계자들의 감탄을
자아냈는데요. 남정희 선배님의 곡은 대부분 백영호 선생님의 작품인데,
당시 남정희 선배님을 가리켜서 ‘애수조의 허스키’라고 평하곤 했습니다.
이미자 선배님의 노래 스타일인 ‘애수어린’ 목소리에 문주란 선배님의
‘허스키’한 매력이 섞여서 남정희 선배님만의 매력을 보여주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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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남정희 선배님은 10년 조금 넘게 가수로 활동하다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하면서 가요팬들을 안타깝게 만들었고요. 훗날, 여러 가요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남정희가 살아있었다면 가요계의 판도가 달라졌을 것이다”.

‘새벽길’은 남정희 선배님 외에도
김영임, 이미자, 이숙희, 김부옥, 이영숙, 김준규님 등등
정말 많은 가수들이 다시 리메이크할 정도로 지금도 여전히 여러 가수들에게 사랑받는 곡인데요. 애절한 감정으로 노래를 듣고 따라 불렀던 옛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면서 감상하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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